사람들은 ‘댄서’라고 하면 무대 위에서 빛나고,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에너지를 터뜨리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런데 내 성격은 그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나는 오히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말보다 몸으로 표현하는 게 더 편한 사람이었다.
“말보다 움직임이 먼저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활발한 친구들 사이에서 조용한 쪽에 가까웠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늘 어긋났다. 말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도 모른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됐다.
그러다 춤을 처음 접했을 때, 그 감정은 달랐다. 음악이 흐르고 몸이 반응할 때, 말로는 할 수 없던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몸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느끼는 감정, 내 안의 리듬, 나만의 리액션… 이 모든 게 춤이라는 언어를 타고 세상에 닿았다.
춤은 나에게 말 대신에 선택한 ‘표현 방식’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창구였다.
“무대 위의 나와 무대 아래의 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무대 위에서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고 느끼지만, 실제로 무대에서 내려오면 나는 조용하고, 주목받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다. 무대는 내게 '숨을 수 있는 공간'이자 '진짜 나로 나올 수 있는 공간'이었다.
평소에는 차마 말 못하던 감정도, 무대 위에서는 음악과 함께 꺼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춤은 ‘발산’이자 ‘해소’였다. 내 안에 쌓였던 감정들을 가장 건강하게, 가장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춤을 추고 나면 가슴 속 응어리가 조금씩 풀렸다. 그러니까… 그건 치료였다. 아주 깊은, 조용한 치유.
“춤이 나를 살렸다”
춤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사람들과의 관계, 내 감정의 균형, 불안한 마음… 이런 것들을 춤을 통해 풀어내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댄스를 “기술”이나 “예술”로 보겠지만,
내게는 삶을 버티게 한 심리 치료였다.움직임을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고, 움직임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움직임을 통해 나를 회복시켰다.
춤은 내성적인 내가 세상과 대화하는 방식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는 방법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큰 구원이었다.
지금은 무대를 떠났지만, 내가 춤을 사랑하는 이유는 여전하다. 춤은 나를 구했고, 지금도 나를 안아준다. 그래서 나는 평생 이 언어를 쓰며 살 거다. 비록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이더라도, 몸으로는 전할 수 있으니까.